2월 23일 서른살의 꿈일기










그녀를 다시 만났다.


말리부의 높은 언덕 위 넓은 야외 연회장이었다. 모래언덕 위에 길게 자란 풀들이 태평양 바닷바람에 휘날리고 곳곳에 장식한 화려한 꽃잎들도 팔랑팔랑 흔들렸다. 작은 전구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연결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다. 기억하고있던 캘리포니아의 하늘이 맞았다. 택시를 타고 한참을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올라온 그 곳에, 내 앞에 네가 서있었다. 웃는 얼굴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어깨에 닿는 긴 단발머리, 쌍커풀 없이 동그랗고 끝이 긴 눈, 하얀 피부. 갈색 가디건을 입고있던 너는 택시에서 내리는 나를 맞이해줬다.


“잘 지냈어?”


말을 먼저 꺼낸 게 그녀였는지, 나였는 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색한 인사 뒤로 어색하게 서로를 보고 웃으며 발길을 옮겼다. 바람에 머리가 휘날려 웃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나는 그녀의 안내를 따라 저녁식사를 하는 애트리움으로 향했다.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새삼 서글퍼졌다. 우리는 왜 헤어지게 되었을까? 우리의 사랑이 부족했던 탓일까? 그 누구보다도 아낌없이 사랑했던 것 같은데. 우리가 너무 어려서 그랬던 걸까? 너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냐.. 헤어지는 게 옳았다.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도착한 애트리움은 온실을 개조한 것 같았다. 커다란 유리 건물 안에 들어가니 갖가지 열대 식물과 꽃들이 장식되어있었고 피라미드 형태의 천장 꼭대기엔 오래된 샹들리에가 걸려있었다. 한 켠에는 흰 페인트가 칠해진 긴 탁자가 놓여있고 사람들은 그 곳에 앉아 식사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온실의 한 구석에는 또 작은 온실이 마련되어있었다. 담쟁이와 수국, 이름 모를 붉고 커다란 꽃들이 가득한 그 방 한 가운데에는 낡은 침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퀼트로 된 이불은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는지 색이 바래 낡아있었고 방 안에는 작은 초가 몇개 켜져 있었다. 마치 누가 사용하는 것 처럼. 곧 시선을 돌려 그녀가 나를 몇몇 어른들에게 소개시켰고 나는 그 분들과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 곳에 온 건 우연찮은 기회에 미국 여행을 하게 되어서 였다. 발길을 떠나오면서 떠올랐던 건, 5년 전의 너. 서로 많이 아프게 하고 헤어졌던 터라 늘 너의 안부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어떻게 우리가 연락이 닿아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 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반가웠고 다행이었다. 너무 여리고 나약한 사람이라 내가 준 상처 때문에 정말, 말그대로, 확 죽어버리진 않았을까, 원하는 학교엔 들어갔을까, 나 때문에 잘 못지내면 어쩌지.. 내 탓을 하는 게 과한 자의식일지도 모를 만큼 그녀의 안부가 걱정이 되었다.


이내 그녀의 근황을 알려준 건 그녀 본인이 아니라 내 옆에 앉은 목사님이었다.


“K랑 오래 전 친구였다고?”
“네.”
“얘가 그러면 매화학교에 진학했던 것도 알고 있나?”
“..?”
“내가 말야, UCLA에 지원을 하기가 싫으면 다른 주에 있는 명문대로 지원해보라고 했는데도 굳이 매화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해서 말이지.”


매화학교.. 잘은 모르겠지만 이 온실까지 오는 길에 옆에 있던 큰 건물이 그 학교를 지칭하는 것 같았다. 한인 교회에서 설립해서 중,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운영되는 곳이라고 했다. 목사님에게 그녀가 매화학교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머리가 띵 해졌다. 내 탓에 그렇게 된 것 같았다. 내로라 하는 명문대는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만큼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나를 만날 당시 전공을 바꿔 새로운 학교에 진학하려고 하는 과정이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절박함과 노력을 방해하는 인물이었다. 사랑해 달라고, 놀아 달라고, 너 따라 미국에까지 왔는데 네가 나를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두면 나는 어떡하냐고, 이기적이고 어리게. 말도 안될 만큼 폐를 끼쳤다. 그래서 그런지, 늘 그녀를 떠올리면 미안함과 걱정이 함께 들었다. 나 때문에 원하던 학교에 가지 못했으면 어쩌지-


“그리고 지금 매화학교에서 관리자 역할을 하면서 일하고 있다네.”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쓸쓸한듯, 행복한듯 웃었다. 그러자마자 온실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던진 공이 온실 벽을 쾅 하고 쳤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호통했다. 너도 변했구나, 큰 소리 한 번 제대로 못내던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일 좋아해?”


내가 웃으며 묻자, 그녀는 곧 얼굴이 빨개져서 자리에 얼른 다시 앉았다.


“응, 뭐.. 나는 원래 아이들도 좋아하고.”
“응, 그랬지.”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던 그녀였다. 처음엔 지휘를, 그 다음엔 건축을, 그리고 그 모든 걸 가진 영화가 하고 싶다 했었다. 내 방해 때문에 그 날개가 꺾인 것 같아 마음이 안좋아 고개를 떨궈 애꿎은 접시만을 바라보고 식사에 집중했다. 그런 나를 보더니 그녀는 곧,


“날 여기에 보낸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괜찮아.”


라며 웃어줬다. 참 다정해, 너란 사람은.






* * *






우리는 둘이 편안하게 대화하기 위해 함께 천천히 걸으며 학교 구경을 했다. 해가 조금 기울어 하늘은 푸른 색이 되어가고 있었고 야외를 장식한 전구들이 하나둘 씩 켜져 반짝이고 있었다. 축제 기간인지 이곳 저곳에서 어른이며 학생이며 할 것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듣기 좋았다. 저 멀리서 파도 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트럼본, 트럼펫, 바순을 들고 학생들이 급하게 어디론가 마구 뛰어갔다.


“우리 학교에선 관현악을 많이 지원하거든, 나도 가끔 지도하고.”


그녀가 뛰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쟤네 또 늦었나 보네, 곧 오디션인데- 하며.


“우리도 구경 갈래? 아마 지금 조율 중일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빠른 걸음으로 그녀와 함께 콘서트홀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대형을 이뤄 앉아있었고 아까 뛰어가던 관악기 3인방이 헐레벌떡 들어와서 음을 맞추고 있었다. 바순 연주자는 의외로 머리를 한쪽 아래로 묶어 내린 작은 여자아이였는데 아직 악기 다루는 게 능숙하지 않은지 소리 내는 것을 몇 번 실수하더니 지휘자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아고,’ 하고선 이내 성공하고 지휘자의 눈치를 보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에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학교 음악실처럼 관객석과 무대가 층이 구별되지 않은 작은 곳이었고 나는 무대 바로 앞 긴 의자에 기대 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뒤에 얼마나 좌석이 찼는지는 보지 못했다. 이내 무대의 학생들이 자리를 재정비 하고 지휘자가 옷 매무새를 다듬기에 뒤를 돌아보니 꽤 많은 관객들 —아마 대부분은 교회 신자들 이거나 부모님, 선생님들이었을 것이다—이 자리를 메워서 깜짝 놀랐다. 고등학생일 적의 내가 떠올랐다. 작고 서툰 오케스트라였지만 그 곳에서 첼로를 연주하며 나는, 그리고 친구들은 행복했다. 그래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지휘 공부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경을 느꼈다. 나도, 음악 정말 좋아해.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웃으며, 공연에 방해될테니까 자리를 옮기자, 라고 했다.


걸어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우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는 그동안 여행했던 곳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줬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다녀온 이야기, 에메랄드와 대리석으로 꾸며진 다층 형태의 터키식 욕탕 유적을 보고 온 이야기. 터키식 욕탕은 내가 늘 보고싶어하던 유적이었기에 내 생각이 났다 했다.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그 사진이 꼭 내가 그 곳에 가있는 것 처럼 실제 크기로 생생하게 보였다. 층 마다 둥근 형태의 탕이 자리잡고 있는 형태로, 푸른 빛을 띄는 물이 위의 욕탕에서 맨 아래층 욕탕까지 어느곳은 폭포수처럼 쏴아아, 하고 떨어지다가도 어느곳에선 얕은 냇물 처럼 부드럽고 잔잔하게 흘러 맨 아래까지 물이 순환하는 구조의 욕탕이었다. 아름다웠다. 푸른 빛의 물과 다층으로 이루어진 구조가 꼭 비밀의 샘 같아, 어느 누구도 해주지 않는 이야기들을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것 같았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녀는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쏴아아아, 또르르르.. 찰방찰방 똑, 똑.. 쏴아아..




* * *




우리는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이번엔 나의 안부를 전할 차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4년 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서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도, 키우던 강아지도.. 같은 해에 모두 잃었어.”


코 끝이 찡해졌다. 그 이후로 더 이상 이을 말이 없었다. 나의 안부, 는 그것들이 전부였다. 그것 말고는 난 잘 지내왔으니까. 그녀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듣고 얼마나 당황하고 미안해할 지 가늠이 되지 않아 바라보지 못했다. 그저 멀리에 나부끼는 언덕위의 갈대와 바람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래 나는 이 넓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엉엉 울었었다. 아빠, 아빠, …


“미안, 너무 무거웠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 스트레스가 많았나 봐.”
“응..아냐. 힘들었겠다..미안..”


네가 뭐가 미안해, 늘 바보처럼 자기가 더 미안해 하고 안부를 물은 것 조차 미안해 하는 널 보며, 아 그래. 그녀는 이런 사람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녀는 다정하고, 예민하고, 상냥하고, 자신만의 도덕적인 관념과 체계가 잘 잡혀있는 사람이었다. 그 틀을 깨는 것을 힘들어하고 당황스러워했던 그녀는, 자유롭게 뛰어다니려는 내가 처음엔 신선하고 새로워 보였을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넓혀주는 통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면서 그녀는 이런 나를 부담스러워 하고 힘들어했고, 나는 그녀가 답답했다. 그래, 우리가 그랬었지. 그래, 헤어지는 게 옳았어. 우리는 서로를 구속할 수 없었고 조율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은 있어?”


그녀와 만나고 돌아다니는 내내 묻고 싶던 질문을 아무렇지 않은 체 하며 던졌다. 그녀는 처음엔 당황한 눈빛을, 그 다음엔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냥 뭐. 연락 하는 사람은 있어.”


라며 그녀의 메신저 대화기록을 보여줬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절대 없었을 일이다. 상대방은 상파울루에 있는 학생이고, 그래서 상파울루에 다녀왔다 했다. 예술사학을 공부한다 했고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고. 아직 사귀는 단계는 아니고, 그저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는데, 상대방은 관계를 진척시키고 싶어 하는듯 하다 했다. 대화창엔 상대방의 말풍선이 눈에 띄게 훨씬 많았고, 가끔 공부하다가 알게되는 예술과 작가에 관련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그녀에게 설명해주는 장문의 메세지도 있었다.


“네가 보기엔 어때?”


라며 내 의견을 묻는 그녀에게,


“응, 재미없네.”


라고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그녀는 깜짝 놀란 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양 볼에 보조개를 만들며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아 재밌어, 응, 맞아, 하하하- 하며.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 좋았던 건 너와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상파울루의 그이처럼 고루한 이론 말고 우리의 생각을 나눴을 때, 좋은 작품을 보았을 때, 의견 차이 때문에 싸웠을 때, 네가 작곡가들의 뒷 이야기를 해줬을 때, 그냥, 그런 모든 예술에 관해 이야기 했을때. 정말 좋았다.


소리내어 웃기를 멈춘 그녀는 갑작스레, 그녀답지 않은 호기로운 말투로, 진지한 눈빛을 하며 나에게,


“그래서 말인데, 우리 다시 만날래?”


라며. 나를 벙찌게 만들었다. 아니, 아냐. 그 이야기가 귀를 타고 들어온 순간부터 답은 정해져있었다. 아니야.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곁에 5년동안 함께한 사람이 있어서 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냥 서로 지나간 사람들일 뿐이다. 눈부시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다 하여 뒤로 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그런 사람들일 뿐이다. 노랫말이 귓가를 지나쳤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그래, 내가 실없는 소릴 했지?”


그녀가 시선을 아래로 피하며 웃었다. 분명히 큰 용기를 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만나자고 했을 그 순간부터 쭉 준비해왔을 말 일런지도 모른다. 어떻게, 어느 순간에 전해야 할지 오늘 하루종일 고민했을 것이다. 나의 대답없음에 차가운 바닷바람이 더 차갑게 우리를 휘감았다. 빛나던 전구들이 깜빡깜빡 곧이라도 꺼질 것 같았고 깊은 바닷물처럼 새파랗던 하늘이 검푸른 색으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미안해 할 그녀를 위해 소재를 바꾸려 노력했다. 그래, 그녀에겐 동생이 있었다. 그녀와는 반대되는 성격의 톡톡튀는 여동생 이었는데 나는 그 동생이 참 귀여웠고 마음에 들었다. 더 친해지고 잘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해주지 못해 못내 아쉬웠던 것 같아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동생은 잘 있어?”
“응, 그게.. 잘 있다고 해야 하나..사실 나도 잘 몰라.”
“잘 모르다니? 어디 멀리 갔어?”
“..아마, 그런가 봐. 나도 잘 몰라..”


그녀는 어렵게,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녀의 동생은 변함없이 잘 지냈다고 한다. 학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다를 것 없이 지냈는데, 언젠가 부터 심각한 불안증세를 보였다고. 온실 안쪽에 있던 작은 유리 방에서 지내며 학교를 쉬고 있던 동생은 3일 밤낮을 침대에서 나오지도 않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냐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고, 그 어떤 말도 해주지 않고 그저 엉엉, 소리내어 세상이 끝난 듯이 엉엉 울기만, 울기만 했다고 한다. 낡은 퀼트 이불로 무릎을 덮어 세우고 까만 단발머리를 푹 숙여 끌어 안은 무릎위에 파묻고 엉엉.. 또 엉엉.. 동생이 유리 방에서 지냈을 때 부터 가족들이 돌아가며 온실에서 곁을 지켰고, 동생이 울고 3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 날은 그녀가 동생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새벽에 한기가 들어 눈을 떠 보니 동생은 사라지고 방은 비어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찾아도, 어딜 뛰어다녀도 아무 데도 없는 거야.”
“…”
“경찰에도 연락하고 한참을 찾았는데, 아직도 못찾았어.. 어딘가로 갔나 봐. 뭐가 정말 견딜 수 없었나 봐. 그냥, 사라졌어. 그런데 이상한게 있지? 꼭 어딘가 잘 있을 것 같단 말야. 그래서 언젠가 언니! 하면서 올 것 같단 말야.”


그녀의 눈이 촉촉해지고 눈빛이 멀어졌다. 이번엔 내가 미안했다. 그런 마음이 들게 해서 미안해.


“미안..”
“응, 아냐.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잘 있으면 좋겠어.”
“응 정말..”


마음이 추워져 치마 밑으로 덮고있던 담요를 끌어당겼다. 구두를 신은 발끝이 시려왔다. 좋아하는 다홍빛 구두인데, 오늘은 정말 내 발을 아프게 했다. 유리 방 안에서 흔들리는 촛불들과 깊은 숲처럼 무성한 식물들 사이에서 울고 있었을 그녀의 동생의 모습이 자꾸, 자꾸 떠올랐다.






* * *






“혹시, 숙소까지 라이드 해줄 수 있어..?”
“응, 당연하지!”
“차는? 바꿨어?”
“아니, 그대로야”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검은색 쿱을 탔었다. 차를 처음 사고 제일 먼저 시승해 본 건 나였다. 어머님을 태워드려야 하는데 나를 먼저 몰래 태워주고 도망갔던 기억이 난다. 깜찍하게도 ‘이 차는 내것이 아냐. 너랑 나, 우리거야’ 라고 했던 그녀의 어린 모습도. 뒷쪽의 주차장을 바라보니 내가 기억하는 그 차의 사이드미러가 빼꼼 보였다. 왠지 모를 기대에 마음이 설렜다.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그 차로 우린 참 많이 누비고 다녔다. 내가 운전을 못하던 때라 그녀가 욕심 많은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많이 고생했을 것이다. 싫은 내색 하나 하지 못하고.


“오늘까지도 운전해달라고 하네. 미안.”


그녀는 또, 웃어줬다. 괜찮아 정말, 그러려고 했는걸- 하며.


저녁이 깊어가고 있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그래, 맞아. 내가 기억하던 밤 하늘이야. 은하수와 성단이 쏟아질듯이 반짝거리고 오리온 좌가 더할나위 없이 밝아보이던 그 하늘. 별의 길이 구름처럼 이어져있고 차가운 바람이 내 머리카락과 속눈썹을 훑고 지나가는, 그런 밤. 학생들은 야외에서 프로젝트 빔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고 우린 그 사이를 지나 차로 향했다. 우리의 영원한 헤어짐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진짜 꿈의 결말



저녁이 깊어가고 있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그래, 맞아. 내가 기억하던 밤 하늘이야. 은하수와 성단이 쏟아질듯이 반짝거리고 오리온 좌가 더할나위 없이 밝아보이던 그 하늘. 별의 길이 구름처럼 이어져있고 차가운 바람이 내 머리카락과 속눈썹을 훑고 지나가는, 그런 밤. 학생들은 야외에서 프로젝트 빔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고 우린 그 사이를 지나 차로 향했다. 방금까지도 보였던 차가 눈에 띄지 않아 그녀가 차 키를 계속 눌러 위치를 확인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차 바로 위에 땅을 밟고 있듯이 서있었다.



“앗, 나 썬루프 밟은 것 같아!”

“하하, 차가 왜 거기있지?”



차 문을 열 수가 없어서 우리는 썬루프로 차 안에 들어갔고 그녀는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머얼리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의식이 멀어져갔다.


알람이었다. 옆을 돌아보니 내 곁을 5년간 지켜온, K가 아닌 현재의 그녀가 등돌려 자고 있었고 나는 곁에 누운 그녀의 허리춤을 안았다. 그러자 잠결에 내 팔을 꼭 끌어안아 안으로 당긴다.



안녕 옛 사랑아, 나는 곧 그녀 곁에서 일어나 출근 해야 해. 만나서 정말, 고맙고 그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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